정운찬 전 총리의 쓴소리 세상의 이야기


- 지난 대선 때만 해도 ‘경제민주화’ ‘동반성장’이 화두였는데, 지금은 쏙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새 다 잊은 모양입니다. 여당은 한 마디도 안 하고 야당도 관심이 없어요. ‘야당마저 그러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다른 일로 너무 바쁘다’고 하더군요.(웃음) 정치권이 아직도 그 심각성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우리 경제가 몇몇 대기업에 좌지우지 되는 게 비정상이죠. 정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삼성, 현대가 잘못돼도 좋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지난 60년 동안 선(先)성장 후(後)분배 논리로 대기업 중심 성장을 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졌으니 이걸 바로잡자는 거예요.”

- 다른 나라 사정은 어떤가요.

 “우리처럼 대기업 중심으로 발전한 나라는 거의 없어요. 일본도 대기업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중소기업도 튼튼합니다. 대만은 아예 중소기업 중심이어서 한두 업종이 휘청해도 큰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재벌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 전체가 큰 타격을 받습니다. 취약한 경제 구조죠.” 

- 대기업 중심 성장이 양극화를 심화시켰다고 보는 이유가 뭔가요.

 “과거 대기업 중심 성장정책 논리가 ‘큰 기업이 성장하면 작은 기업도 그 혜택을 받아 성장한다’였어요. 일종의 낙수효과를 기대한 거죠. 그게 가능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정한 거래를 해야 합니다. 불공정거래에서는 낙수효과가 생기지 않아요. 또한 대기업이 국내에서 사업을 하지 않고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 국내 경제엔 낙수효과가 생길 수 없어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은 어떻게 보는지요.

 “가계에 직접 소득이 가도록 해 ‘소득 주도 성장’을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이를 분수효과라고 합니다. 가계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생산이 늘어난다는 것이죠.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정책을 폈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라도 이 정책을 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기본 방향은 잘 잡았는데,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 어떤 점이….

 “대기업에 사내유보금이 너무 많으니까 배당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겠다고 하는데, 대기업 주식은 대부분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가졌어요. 개인투자자 역시 주식 배당으로 먹고살 정도면 이미 쓸 거 다 쓰고 사는 사람입니다. 배당을 늘린다고 국민 소비가 더 늘진 않아요. 또한 임금을 올리도록 유도한다고 하는데, 기업으로선 임금을 한번 올리면 내리기가 힘드니까 쉽지 않죠. 설령 임금이 올라 소득이 늘었다 해도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이 훨씬 넘어요. 돈이 생겨도 소비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죠.” 

- 해결방법이 있다면.

 “소비보다 투자를 촉진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경제가 발전하려면 생산능력이 확충되고 생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야 합니다. 1970년대 초반부터 1997년까지 가계소득과 기업소득 모두 연 평균 8%씩 늘었는데, 2005년부터 지금까지를 보면 가계소득은 연 1~2% 증가한 반면 기업소득은 연 19%씩 늘어났어요. 그런데 투자가 거의 안 됐어요. 그만큼 기업유보금이 쌓여 있는 상태죠. 그 규모가 250조 원에 달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도 그렇고 전임 대통령들도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규제개혁을 실시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규제를 없애면 기업이 투자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윤이 남는다면 규제에 관계없이 투자하는 게 기업의 속성입니다. 투자할 곳도 없는데 투자를 하라니까 규제 핑계를 대는 거죠. 역대 대통령이 다 그렇게 속았어요.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벌개혁을 제대로 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재벌의 힘이 가장 커진 때가 그때입니다. 모 재벌기업 산하 경제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재벌정책으로 삼았다는 얘기까지 나오지 않습니까?” 

- 왜 그랬던 건가요.

 “제가 농담으로,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경제 관료들이 유학 가서 공부를 빨리 끝내려다보니 책을 끝까지 안 읽고 앞 부분만 읽어서 그렇다고 말합니다. 경제학 책 대부분이 앞에는 효율만 이야기하고 문제점은 뒤에서 다루거든요.(웃음)” 

-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이유가 뭔가요.

 “대기업은 천문학적인 여유자금을 가졌지만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투자할 곳은 많은데 돈이 없어 못하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핵심 첨단기술이 부족해요. 우리나라 R·D(연구개발) 지출은 세계 5위이고, GDP(국내총생산) 대비로는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로 높습니다. 그런데도 핵심 첨단기술이 없다는 건 연구(R)가 아니라 개발(D)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에서 연구한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 제품을 개발한 것이죠. 이젠 우리도 개발에서 연구로 가야 합니다.
 대기업으로 흘러갈 돈이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기만 해도 현재의 경제위기는 생각보다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불공정거래가 일상화해 있습니다. 구두 주문, 어음 결제, 기술 탈취, 납품가 후려치기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일본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거래를 보면 본받을 게 많아요. 일본 기업에 납품하는 친구가 있는데, 가끔씩 알 수 없는 돈이 대기업으로부터 입금되기에 알아보니까 정부보조금이 나오면 그 돈을 납품업체들과 나누는 것이라고 합니다. 공정거래를 넘어 상생(相生)을 하는 거죠. 독일에서도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즉각 부품가격에 반영해 하도급업체 납품가격을 올려줍니다. 우리도 이런 상생 문화가 필요합니다.”

- 대기업 초과이익 공유제를 주장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초과이익의 상당부분이 하도급업체에 납품가를 후려치기한 결과입니다. 하도급업체가 허리띠를 졸라 가격을 낮췄기 때문에 대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번 것이니 같이 나누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요.”

- 동반성장위원장 시절 추진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에 대해 대기업들이 불만이 많은 모양입니다.

 “1979년 이미 ‘중소기업 고유 업종’이 지정된 바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없앤 걸 제가 ‘고유’를 ‘적합’으로 바꿔 살려냈습니다. 신청한 230여 개 업종 중에서 레미콘, 두부, 된장, 간장, LED조명 등 82개를 선정했습니다.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국민이 지켜보니까 대기업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즘 대기업이 77개 업종을 풀어달라고 언론 플레이 하는 것을 봤습니다. 참 탐욕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 중소기업적합업종 선정으로 오히려 외국 대기업에 국내 시장을 내주게 됐다는 주장도 있던데요.

 “LED조명 시장을 세계적 기업인 필립스가 잠식한다고 예로 드는데, 필립스코리아는 우리나라에서 저위기술로 만드는 LED조명을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에서만 만드는 게 효율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합업종 지정을 취소하면 중소기업은 다 망하고 양극화는 더 심해집니다. 그러면 경제가 더 활력을 잃고 사회불안, 사회파탄으로 이어져 결국 대기업도 망할 수밖에 없어요.” 

- 동반성장위원장 할 때 일정 규모 이하의 공공발주는 중소기업만 입찰할 수 있도록 했죠.

 “과거엔 대부분 대기업이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낙찰받은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다시 하도급을 줍니다. 중간에서 이윤만 남기는 거죠. 그래서 차라리 중소기업에 직접 주자는 것이었습니다. 중소기업이 크게 덕을 본다며 고맙다는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공정거래, 중소기업 보호, 지원을 통해 대기업으로 흘러갈 돈을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도록 하면 중소기업이 그 돈으로 투자를 하고 생산을 늘리고 고용을 늘리게 됩니다. 그러면 직원 소득이 늘어나 소비 수요가 늘게 돼 경기침체를 완화하고 지속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중간 생략)
 그 책(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아직 다 읽진 않았지만 피케티의 연구 방법이나 지엽적인 부분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지금 전 지구적으로 불평등이 문제가 된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조차 인정하지 않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 세계적으로도 양극화가 심각한 모양입니다.

 “미국에서도 3년 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운동이 벌어졌죠. 그런데 3개월쯤 지나면서 시위가 사라졌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부자들이 시위를 의식해 기부를 많이 했기 때문이죠. 조지 소로스, 마이클 블룸버그,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등이 나서서 거액의 기부를 하고 동료 부자들에게도 기부를 독려하자 양극화에 대한 분노가 누그러진 거죠. 유럽은 이전부터 양극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요. 그에 비해 우리는 아직 미흡합니다.”

- 우리나라 빈부격차는 얼마나 심하다고 보는지요.

 “피케티의 말처럼 유럽이나 일본보다는 심하지만 미국보다는 덜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미국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미국은 유산상속으로 부자가 된 경우가 20% 정도고 나머지 80%는 자수성가를 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거꾸로 자수성가는 20%밖에 안 되고 상속 부자가 80%나 됩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큰 거죠.”

- 소득불평등을 해소할 근본적인 방법이 있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70~80%는 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게 효과가 있습니다. 내년부터 시간당 5600원 정도를 적용하도록 정해졌는데, 너무 낮은 수준입니다. 증세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 증세라면 부유세를 말하는 건가요.

 “부유세를 만들기는 정말 힘듭니다. 누진세를 수정하자는 거죠. 누진세율을 더 확대한다든지, 과표 구간을 더 늘린다든지, 여러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 정운찬 전 총리, 동아일보 최호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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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 I T V S 2014/11/16 15:03 #

    흠.. 이 의견에서 우파에서도 양극으로 나뉘어서 피바람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 바탕소리 2014/11/16 15:08 #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뭔가 시도해 보는 게 나을 수도 있겠죠.
    경제에 관해 논하시는 다른 뉴밸 분들(예: 멋부리는 눈토끼님, oso님 등)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 NEO rep 2014/11/16 15:32 #

    피케티, 상대적 박탈감, 누진세, 최저임금 인상에서 이미 글 논지가 다나오는것 같습니다만...쩝.
  • 바탕소리 2014/11/16 15:40 #

    적어도 중소기업 문제에 대한 의견은 정책에 반영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재규어 2014/11/16 22:44 #

    두서없고 결말도 두리뭉실하게 글을 남길 것 같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시장 규모에 비해 비정상적인 자영업 비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곧 중소기업 대출을 앞지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고, 정부도 대책을 고심중입니다.

    * http://www.hankookilbo.com/v/397abd1db7d34f7bb3b6f164840eb6a9

    자꾸 미국이나 일본을 비교하는데 위의 기사에서 다루듯

    "자영업자 대출 급증의 밑바탕엔 자영업 비율이 유난히 높은 한국 특유의 경제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2.5%로 미국의 3.5배, 일본의 2.6배에 달한다. 여기에 총인구의 15%를 점하는 50대 베이비부머 세대가 대거 창업에 나서면서 지난해 말 자영업자 수는 537만명으로 2009년 대비 10.4% 증가했다."

    이게 현실이죠.

    임금상승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업이 이윤핑계 댄다고 말하듯 규제성욕자들이 핑계대는 대기업들의 반발도 파고들어가면 현실이 보이죠. 임금상승은 생각보단 대기업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주체니까요 일반 국민이자 소비자이자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문제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생계형 주택담보대출이 많은 것이고 당연히 대출받은 빚갚느라 소비를 할 틈이 없는겁니다. 더욱이 50대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창업 러쉬는 지난해부터 급증 중 입니다. 더불어 폐업과 파산신청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죠.

    시장구조 개혁도 문제인것이 대기업이 후려치기만 한다는 발상으로 접근하여 정부에서 손을 쓰기 시작하면 기업들이 이득을 보는 선에서 하도급 업체를 줄이거나 해외발주로 눈을 돌립니다. 이것도 큰 그림에선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시 일어나는 부작용과 같은 상황이 기업간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규제만으로 기업과 시장을 움직이려 할 경우를 우리는 농민들이 피해를 본 대형마트 규제나 최근의 단통법을 통해 간접 체험을 했습니다. 또한 곧 시행될 도서정가제도 있죠? 세일을 하지 못하는 중소 서점을 살리기 위해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면 바로 출판업계의 피해로 돌아오고 표지가 더욱 두껍고 비싼 양장본들의 증가로 이어지겠죠, 선택권은 줄어들고 소비자의 피해는 늘어가는 것이죠.

    이런 규제로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이들의 특징은 소비자의 피해를 막겠다면서도 경직된 시장에서 기존의 소비패턴이 유지되길 기대하는 겁니다. 즉, 기업이윤 보호를 위해 소비자들에게 그만큼 부담을 강요 하는 겁니다. 국민들에겐 소비를 외치면서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거죠.


    그리고 월가를 점령하라, 99% 시위가 줄어든 이유는 부자들의 기부가 아니라 이들이 폭력집단이자 무차별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변질되어 사회로 부터 비난 받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초기 단 한달동안만 해도 사회적 소모비용이 엄청났고 그 기간 경찰병력 운용비만 100억이 넘게 소모된 이 운동은 3년이나 명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성과는 대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40억원 정도가 해결된 것 뿐입니다. 물론 금융정책을 악용하거나 탐욕을 제어하지 못한 금융계에 대한 세계적인 반성과 관심을 끌어낸 점은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초기에 지적하던 소득 불균형은 외형적으론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금융인들에 대한 분노 또한 공허한 메아리가 되었고 뭔가 초점이 틀렸다는 지적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작 피해를 복구하고 기업과 시장에 다시 돈을 끌어모은 이들이 바로 그 탐욕스럽다고 욕먹던 금융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운찬 총리의 발상 자체는 크게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정치인의 발상이라기 보단 청와대나 공무원들의 입장에서의 다양한 해결책을 고민한 흔적이 보이니까요. 좋은 의견이던 아니던 반대만 일삼는 국회가 나라를 망치는 주범인 상황에서 이론이나 조언만 가지고는 이젠 판단하기가 귀찮아지네요.
  • 바탕소리 2014/11/17 00:59 #

    1. 일단 이 누추한 일개 신문스크랩 블로그에 다시 와 주셔서 감사드리며……. 그러고 보니 정운찬 전 총리는 자영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요. 그 외에도 재규어님 댓글을 보니 정 전 총리가 간과한 것들이 몇 가지 있기도 하고……. (시장 규제를 꼼수로 피해 가는 기업들의 영악함이라던가)

    2. 경제, 이게 참 어려운 주제라 말(또는 키보드)로는 명확한 결론을 낼 수가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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